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해 해군기지 (문단 편집) == 역사 ==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0년대 초반 구 일본 해군이 설치한 진해요항부[* 일본 해군의 기지는 중요도에 따라 3단계로 나뉘는데 요항부는 개중 가장 낮은 단계의 주둔지이다.] 기지가 진해에 있었다. 사실 일제가 처음 세력을 심은 곳은 진해가 아니라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문화동-두월동 일대의 일명 "신마산"이었다. 일본군은 러일전쟁 승전 이후 마산에 있던 러시아 조차지[* 현재의 월영마을 아파트촌부터 [[해운중학교]] 앞까지의 부지]를 할양받고 이 곳에 육군 주둔지와 해군 기지를 세웠다. 그런데 마산만은 수심이 너무 얕고 너무 내륙 깊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기존 기지를 조선군(일본 육군 조선주차군)에게 넘기고, 마산만의 외항인 웅천현(현재의 창원시 진해구)에 새로이 기지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 이후 [[경술국치]]가 일어났고, 일제는 웅천현에 해군 요항부를 건설하며 항만 배후지에 군사도시를 짓고 이 곳을 인근의 진해현[*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진동면 및 진전면 일부 지역. 진해 향교가 뜬금없이 진동에 있는 이유가 '''원래는 진동이 진해였기 때문이다.''' 위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 현재의 진해구는 원래 웅천현이다.]의 이름을 갖다붙였다. 8.15광복 후 창설된 대한민국 해군은 진해요항부를 접수하여 1990년대 말까지 해군 모항으로 써먹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나이 든 어르신들 중에는 이 곳을 "통제부"라고 부르는 분들이 아직 있다. 현재는 헤드쿼터 기능을 부산으로 넘겨주었지만 그래도 많은 해군 관련 기관과 시설, 기지가 남아있어 진해기지사령부(약칭 진기사)라고 불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